세종
“근자에는 왼쪽 다리마저 아파져서 일어날 때면 반드시 사람이 곁을 부축하여야 하고,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있어도 반드시 놀라고 두려워서 마음이 몹시 두근 거린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서거 1년 전-
세종은 평생 비만과 당뇨, 임질, 종기 등 십수 가지 병마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이는 아버지 태종의 외척 척결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한글 창제 등 격무에 시달리다 건강을 잃었다.
문종
문종의 등에 난 종기는 길이 30cm, 너비 15츠의 엄청난 크기였다. 문종 2년, 5월 14일 <조선왕조실록>에는 종기에는 약 360cc의 농을 짜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종기의 독이 온 몸에 퍼져 즉위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종기는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생긴다”
-<동의보감>-
주술을 쓰다 폐위된 첫째 부인 휘빈 김씨, 무수리와의 동성애로 폐위된 둘째 부인 순빈 봉씨, 세자를 낳은 이튿날 산병으로 숨진 셋째 부인 권씨까지 불행한 가정사가 문종의 화병과 종기 원인으로 지목된다.
성종
어느 해 여름에 더위를 먹고 가까스로 살아난 성종으 이후, 서증(더위를 먹은 병)으로 평생을 고생했다. 게다가 왕족임에도 처가살이를 한 신세에 대한 한탄과 답답함이 더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38세에 요절한 성종의 직접적인 사인은 배꼽 밑 작은 적취(배 속에 생기는 덩어리)였다. 이는 신장이 허약해 생기는 증상인데, 밤마다 술과 여색을 즐겨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연산군
연산군은 몸에 좋다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었다. 백마, 귀뚜라미, 잠자리, 메뚜기, 도마백도 약으로 먹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고, 왕후와 후궁을 통틀어 후사는 2남 1녀에 불과했다.
<실록>에는 연산군이 역질로 죽었다고 나와있다. 소변을 찔끔찔끔 자주 봤다 전해지는데, 이는 양기가 부족할 때 생기는 증상으로 지나치게 호색한 탓에 몸이 허약해져 역병에 걸린것이다.
인종
“인종이 중종 탈상 때까지 간을 한 음식은 먹지 않고 밤낮없이 곡을 하는 바람에 심하게 초췌해졌으며, 나중에는 지팡이 없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
지나치게 원리원칙을 따졌던 인종은 아버지인 중종이 죽자 국상을 치르는 동안 죽 말고 다른 음식은 대지 않았다. 결국, 거식증이 그의 심신을 크게 해쳤고 즉위한 지 6개월만에 세상을 떴다.
선조
선조 40년(1607년),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던 중 중풍으로 의시을 잃고 쓰러졌다. 의원들은 심혈관계 질환에 잘 듣는 약을 처방했지만 결국, 중풍과 소화불량을 둘 다 치료하지 못한 채 3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
서자 출신이라는 콤플렉스와 임진왜란 등 전란, 유생과의 다툼 등으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선조는 평생 소화불량을 앓았다. 결국, 선조 41년(1608년) 2월 1일 떡을 먹고 체해 57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효종
<실록>에 따르면 효종은 평생 감기를 달고 살 정도로 약골이었다. 또 식탐과 급한 성격으로 인한 당뇨로도 고생했는데, 감기와 당뇨는 효종의 사인인 종기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소갈병(당뇨)의 끝에 종기가 생긴다.”
-<동의보감>-
효종 10년(1659년), 효종 머리에 작은 종기가 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 전체를 덮을 정도로 번졌다. 의원들이 종기를 치료하던 중 혈관을 건드려 과다 출혈로 사망하고 말았다.
숙종
숙종 일가 모두 천연두로 고생했으며, 재위 9년째인 22세 때 숙종 또한 천연두로 죽을 고비를 넘긴 바 있다. 평생 분노 조절 장애를 보일 만큼 자주 격노했는데, 이는 간염이 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5세 때부터 간염 증상을 보인 숙종은 재위 46년(1720년)에 간경화로 사망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숙종은 배가 터질 듯이 부풀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간경화 말기 증상을 보였다.
경종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 경종은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는 비만에 허약 체질이었고, 처방된 약재로 미뤄 간질을 앓은 것으로 추청된다.
경종은 재위 4년(1724년) 8월 20일에 게장과 생감을 먹은 후 복통을 호소하다가 5일 만에 숨을 거뒀다. 허약한 체질로 소화기가 약했던 경종에게 게장과 감은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정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겪고도 타고난 천재성으로 세종대왕에 비견되는 업적을 이뤄냈다. 하지만 평생 신하들과 갈등을 겪다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 바람에 끊임없이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정조는 자신의 체질과 인삼이 상극이라는 것을 알고 평생 조심했는데, 종기 증상이 심해져 혼수상태에 빠지자 의원들이 인삼이 들어간 약을 과도하게 사용했고, 정조는 결국 사망에 이른다.
고종
평소 새벽 3시경 잠자리에 들어 정오가 다 돼서야 일어났으며, 식사 시간도 불규칙했다. 이러한 생활 습관은 자연스럽게 건강을 해쳤다. 고종은 평생 암살과 테러의 위협에 시달려 밤잠을 편하게 이룰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고종의 사인은 뇌일혈로 인한 중풍 발작. 1919년 1월 21일 새벽 1시경 발작을 시작해 오전 6시 30분경까지 총 열두 번에 걸쳐 발작이 반복된 끝에 숨을 거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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