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과 함께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은 인류의 자존심을 추락시킨 2대 이론으로 불린다. 지동설이 지구와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밀어낸 것처럼 다윈은 인간이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원숭이를 닮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격렬한 종교적·윤리적 논쟁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윈의 이론은 생물이 진화한다는 사실 자체를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구체적·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과학사에 큰 혁명을 가져왔던 것이다.
생애와 연구
1809년 2월 12일 영국 슈롭시어주의 슈루스버리에서 출생.
1817년( 8세) 케이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통학함, 7월 17일 모친 별세.
1825년(16세) 10월, 에딘버러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으나 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박물학과 지질학에 열중.
1827년(18세) 부친의 권유에 따라 목사가 도기 위하여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부로 전학.
1831년(22세) 4월 학사 학위를 수여 받음. 8월 세즈워크 교수와 북웨일즈의 지질탐사에 참가, 12월 헨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학술탐사선 비글호에 박물학자의 자격 으로 승선.
1831년 12월∼1836년 10월 비글호 탐사 (22세∼27세).
1831년 12월 27일 영국 데본포트의 프리머스항 출항.
1832년 (23세) 1월 케이프 데 베르데 군도의 산 자고섬 정박, 열대림에 경탄, 몬테 비데오에서 만각류의 화석을 발견, 라이엘 교수의 「지질학의 원리」 제2권 받음.
1833년 (24세) 4월부터 라플라타강 기슭에서 동·식물 채집.
1834년 (25세) 파타고니아 조사, 6월부터 7월까지 마젤란 해협 부근을 탐사, 대륙 남단을 거쳐 태평양으로 나옴, 칠레의 발파라이소에 도착하여 안데스 산맥 의 산록부 탐사.
1835년 (26세) 발디비아 근처를 조사하다가 대지진을 만남, 4월 발파라이소에서 페루까지 약 900km에 걸친 츅로 탐사에 참가, 9월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 도 탐사.
1836년 (27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탐사, 4월 킬링섬에서 여러 동·식물 및 산호초의 성인 조사, 6월 희망봉, 세인트 헤레나섬 경유 10월 2일 영국에 도착-팔머스에서 비글호 하선, 10월 4일 슈르스버리의 고향집에 귀가, 5년 간의 항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수집해 온 표본들을 정리하며 항해기 의 출판 준비에 착수함.
1837년 (28세) 3월 런던으로 이사 「지질학적 관측」 및 「비글호 항해의 동물 학」 원고 준비, 7월 「종의 기원」에 관한 제1책자의 노트를 시작함.
1838년 (29세) 왕립 지질학회의 총무간사에 취임, 10월 멜더스의 「인구론」정독.
1839년 (30세) 왕립협회 회원으로 피선, 1월29일 좆 웨지우드의 막내딸 엠마와 결 혼, 「찰스 다윈의 일지와 관찰」,「어드벤처호와 비글호의 1826년∼36년 사이의 남아메리카 조사와 비글호의 세계일주 조사 항해담」3권 가운데 제 3권, 상기보고서를 8월 「비글호가 찾아간 여러지역의 지질학과 박물학 연 구」라는 이름으로 재발행. 흔히 말하는 「비글호 항해기」로 1845년 2판, 1860년 3판.
1840년 (31세)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과 함께 런던 교외 다운으로 옮김, 「비글호 항해와 동물학」부문에 서문을 씀.
1841년 (32세) 2월 지질학회의 총무간사 사임, 항해보고의 어류 및 조류 부문을 완성.
1842년 「종의 기원」 초고 35페이지 「1832∼36년 영국 해군 피츠로이 함장 지 휘하에 수행한 비글호 항해기」 지질학 제1부 「산호초의 구조와 분포」 발 간.
1843년 (34세) 「비글호 항해기」 지질학 제2부 「남아메리카의 화산섬과 ㅗ하산 지역의 지질학적 관찰」 발간, 1876년 2판.
1844년 (35세) 「종의 기원」에 대한 노트를 정리 230쪽의 수기로 완성, 이는 다 윈 사후에 「종의 기원의 기초」로서 출판됨.
1846년 (37세) 「비글호 항해기」지질학 제 3부 「남아메리카의 지질학적 관찰」 발간.
1848년 (39세) 11월 13일 부친 별세. 건강이 좋지 않아 장례식에 불참.
1851년 (42세) 「영국의 화석 만각류의 연구」, 「만각류아강 시리페디아 연구」 논문 발간.
1854년 (45세) 「영국의 화석 발라니대와 베루시대 연구」, 「발라니대 베루시대」 논문 발간.
1855년 (46세) 알프레드 윌러스의 논문 「새로운 종의 출현을 지배하는 법칙」발 표됨.
1856년 (47세) 후커 및 라이엘 교수의 권유에 의해 「종의 기원」저술을 기획, 집 필을 시작하여 12월에 제 3장까지 씀.
1857년 (48세) 9월 「종의 기원」제 8장까지 집필.
1858년 (49세) 6월 말레이 군도에서 탐사하고 있던 윌러스로부터 자연 선택으로 인한 생물의 유전에 관한 연구 보고를 받아 정독한 다윈은 자기 학설과 일 치함에 놀라 라이엘경 및 후커 교수와 상의하여 이미 기획한 「종의 기원」 저술을 보류, 논문 「종의 변종 형성의 경향과 자연선택에 의한 종과 변종 의 영속성에 관하여」를 알프레드 윌러스와 공저하여 발표(「린네 학회지」 2권9호, 18페이지) 당시 이 논문은 별로 관심을 얻지 못하였음. 라이엘경과 후커 교수의 권유로 「종의 기원」저술 재개.
1859년 (50세)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흔히 「종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저서 발간, 당일 매진. 1860년 2판, 1861년 3판, 1866년 4판, 1869년 5판, 1872년 6판.
1862년 (53세) 「영국 및 외국산 야생난에서 곤충이 매개하는 수정에 관한 연구」 발간, 1877년 2판.
1864년 (55세) 왕립협회로부터 코프레이 메달을 수여 받음.
1865년 (56세) 브륀의 자연연구회에서 멘델이 「멘델의 법칙」을 발표함.
1868년 (57세) 「사육, 재배하는 동물과 식물의 다양성」발간, 1875년 개정판.
1871년 (61세) 「인류의 기원과 성에 따르는 선택」발간, 1874년 2판.
1872년 (62세)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발간.
1875년 (65세) 「덩굴식물의 운동과 생태」, 「식충식물」발간.
1876년 (67세) 「식물계에서 타화수정과 자화수정의 영향」발간, 1878년 2판.
1877년 (68세) 「동일 종에 존재하는 다른 형태의 꽃」발간, 1880년 2판 케임브리 지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음.
1880년 (71세) 「식물의 운동력」발간, 아들 프란시스 다윈과의 공동연구.
1881년 (72세) 「땅속 벌레들의 활동에 의한 부신토의 형성」발간.
1882년 (73세) 2월부터 심장의 통증이 시작됨, 4월 18일 심한 발작을 일으킨 끝에 4월 19일 오후 4시 서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됨.
이론과 업적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다윈은 1837년 3월에 런던에 삶의 터전을 정하고, 이어서 7월에는 비글호의 항해 이래 생각하고 있던 생물 진화의 문제에 대한 노트의 제1권에 펜을 대기 시작했다.
가축 사육가나 원예가들과 만나서, 동식물의 좋은 종류를 만드는 법을 물은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이와 같이 사람의 손에 의하여 가축이나 재배 식물이 변하게 되는 것과, 자연에서 생물이 변화해 가는 것과는 비슷한 짜임새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생존경쟁에서 이긴 생물의 종류가 살아남아서 (자연 선택), 오늘날과 같은 생물계가 이루어졌다는 결론에 이르렀다(진화).
1856년 초에 친구 라이엘의 권유로 다윈은 자기의 학설을 상세히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858년의 초여름에 당시 말레이 군도에 있던 영국의 생물학자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로부터 하나의 소논문을 받아 읽고 다윈은 깜짝 놀랐다. 자기가 20년간이나 생각해 온 것과 같은 생각이 씌어 있었다.
친구인 라이엘 및 식물학자 후커(J. Hooker)의 권유로 자기가 전에 써 놓은 메모의 요점을 발췌하고, 이전에 친구(미국의 식물학자 그레이에게 자기의 생각을 적어 보냈던 편지를 첨부해서 월리스의 논문과 함께 린네 학회에서 발표(1858년 7월 1일)하기로 하였다. 이런 방법을 월리스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다윈은 매우 걱정하였으나, 월리스는 다윈 쪽이 더 많은 사실을 잘 모은 것을 인정하고 이에 찬성하였다. 윌리스는 뒤에 자신의 학설을 간추려서 쓴 책에 《다위니즘》(다윈설)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린네 학회에서의 발표 직후부터 다윈은 종래의 저작 계획을 축소해 서둘러 책을 썼다. 이것은 《종의 기원》으로, 1859년 11월에 세상에 나왔다. 다윈의 학설이 크게 문제가 되었으며 또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이다.
내용 구성
1장 사육에서 생기는 변이
인간은 가축이나 농작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다. 인간에게 유리한 형질 변이가 일어난 가축이나 농작물만을 골라 키우면 그 형질이 후손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 과정이 거듭되면 자연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게 유익한 품종이 나타난다. 인간의 인위적 선택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다.
2장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이
그런 변이는 자연에서도 일어난다. 종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개체의 변이는 항상 일어난다. 그 개체 변이는 변종으로 발전하고 변종은 새로운 종으로 이어진다.
3장 생존경쟁
모든 생명은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생존경쟁은 같은 종에 속한 개체들과 변종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하다.
4장 자연선택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살아남고 생존에 불리한 변이는 도태된다. 이를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자연선택이 누적되면 새로운 종이 출현한다. 이것은 반드시 진보라고 볼 수는 없다. 국지적 환경에 잘 적응했느냐 못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5장 변이의 법칙
변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상관 변이가 있다. 겉보기에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형질들이 같이 변하는 현상이다. 또 종의 형질은 속의 형질보다 변하기 쉽다. 어떤 종에서 근친종의 같은 부분보다 극도로 발달한 부분은 변이하기 쉽다.
6장 이론의 난점들
종들이 미세한 점진적 단계의 변이에 의해서 다른 종들로부터 생겼다면 우리는 왜 도처에서 수많은 중간 형태들을 보지 못하는가? 지질학적 기록이 불완전할 뿐 아니라 새로운 종은 자신의 원종이나 근친종과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그들을 없애기 때문에 중간 형태는 상대적으로 적다. 어설픈 중간 형태가 어떻게 그 종의 생존에 기여했을까? 날다람쥐에서 볼 수 있듯이 날개와 다리의 중간에 해당하는 형질은 얼마든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7장 기타 반론들
산토끼와 생쥐의 귀나 꼬리의 길이처럼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형질이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았을 리 없다고 일각에서는 주장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변화하면 다른 사소한 부분도 바뀔 수 있다는 상관변이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종은 점진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급격히 변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발생학은 그 강력한 반증이다. 새와 박쥐의 날개, 네 발 달린 짐승의 다리는 배(胚)의 단계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8장 본능
생리구조뿐 아니라 본능도 유전된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행동이 좋은 예다.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일개미가 군집 전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본능도 그런 개미의 존재가 군집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될 때는 생식
능력을 가진 암개미와 수캐미에 의해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
9장 잡종성
어떤 종들은 쉽게 교잡하면서 불임성인 잡종을 낳고 어떤 종들은 지극히 어렵게 교잡하면서 상당한 출산력을 갖는 잡종을 낳는다. 여기서 우리는 종과 종, 종과 변종의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10장 지질학적 기록의 미흡성
지층에 과거에 살았던 생물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란 법이 없다. 지층은 변변찮은 자료가 단편적으로 박혀 있는 대단히 부실한 박물관이다.
11장 생물의 지질학적 연속성
그러나 어떤 지층에서는 종의 변이 과정을 암시하는 중간종이 발견되기도 한다.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에 해당하는 시조새가 좋은 예다.
12장 지리적 분포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는 생물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왜 다른 대륙에서 비슷한 생물이 발견되고 왜 어떤 대륙에서는 이렇다 할 포유동물이 발견되지 않는가? 종들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면 이런 일이 생길 리 만무하다.
13장 지리적 분포 2
대양의 섬에 사는 종은 대륙의 같은 면적에 사는 종보다 가짓수가 적다. 섬에 사는 종들과 가까운 본토에 사는 종들 사이에서는 유연성이 발견된다. 이 역시 종들은 독립적으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14장 생물의 유연 관계
분류학자는 생물들의 유연 관계를 추적한다. 그 관계는 상동 기관, 배, 흔적 기관 등에서 나타난다.
15장 결론
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우연한 변이가 생겨서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자연은 그 변이를 선택하여 후손에게 전달하다. 변이와 자연선택, 곧 우연과 필연의 누적이 진화의 파노라마를 연출한 원동력이다.
진화론
영국의 생물학자 C.다윈(1809~1882)의 생물의 진화론에 관한 저서로서 전문 14장으로 구성되고, 변이(變異)의 법칙 ·생존경쟁 ·본능 ·잡종(雜種) ·화석(化石) ·지리적 분포 ·분류학 및 발생학 등 여러 면에서 자연선택설을 전개하고 있다.
1872년에 간행된 제6판이 최종판인데, 이때 과학적으로 제기된 여러 이론(異論)에 답한 새로운 한 장(章)이 제7장으로 추가되었다.
1859년 11월 런던의 존 머리사(John Murray社) 간행. 다윈은 1858년 7월 1일 린네 학회에서 A.R.월리스와 함께 진화론의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 요약 형식으로 이 책을 간행하였다.
전문 14장으로 구성되고, 변이(變異)의 법칙 ·생존경쟁 ·본능 ·잡종(雜種) ·화석(化石) ·지리적 분포 · 분류학 및 발생학 등의 여러 면에서 자연선택설을 전개하고 있다.
W.페리의 자연신학(自然神學)의 토대였던 적응의 현상에 자연적 설명을 부여하려는 것이 이 책을 간행하게 된 목표 중의 하나였다.
간행 직후부터 종교계의 심한 공격을 받았으나, 약 10년 동안 생물학상 확고부동한 지위를 획득하고, 신앙에 대하여 사상 최대의 타격을 가한 저서로 알려져 있다.
1872년에 간행된 제6판이 최종판인데, 이때 과학적으로 제기된 여러 이론(異論)에 답한 새로운 한 장(章)이 제7장으로 추가되었다.
죽음과 유산
평생토록 열심히 연구 한 Charles Darwin은 1882 년 4 월 19 일 런던의 House Down House에서 사망하여 웨스트 민스터 성당에 묻혔습니다. 다음 세기 동안, DNA 연구는 진화론의 증거를 보여 주었지만, 창조론과의 갈등을 둘러싼 논쟁 (자연의 모든 것이 신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종교적 견해)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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